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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번외칼럼] 

     

     

    마음글씨

     

     

    목운 오견규(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사, 화가)

     

     

     사지가 마비된 사람이 머리속으로 글자를 쓰면 뇌에 심어 놓은 센서가 신호를 받아서 컴퓨터 화면에 글자가 뜬다. 국제학술지 《네이쳐》에선 이런 방식의 글씨 쓰기를 ‘마음 글씨(Mind writing)’라고 했다. 최근에 접한 과학 이야기다.

     

     사실 글씨에 ‘마음’이란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이 동양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동양에선 오래전부터 글씨나 그림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이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춘추시대 때 공자(551~479)는 『논어』에서 회사후소(繪事後素)와 진선진미(盡善盡美)를 강조하고 있다. “그림은 본바탕을 깨끗이 한 후에 그리는 일이며, 또한 미를 이루는 근원은 선이며, 선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미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또한 부처님도 『화엄경』에서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채색을 써서 환상처럼 그림을 그리지만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다.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는 그림을 찾을 수 없다.”고 설파했다. 그 뿐인가? ‘심정즉필정(心正卽必正)’, ‘서여기인(書如其人)’ 등 수많은 글이 사람의 인품과 예술을 동일선상에서 평가하는 경향은 보편화 되어있다.

     

     일례로 중국의 당나라 때, 조정의 관리이자 명필인 노공 안진경(魯公 顔眞卿, 709~784)은 극심한 흉년이 들었던 시기에 청렴한 성품에 한정된 봉급으로만 살다보니 집안형편이 어려워졌다. 몇 달을 죽만 먹다가 그마저 어렵자 친구인 이태보(李太保)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생계를 꾸리는데 재주가 없어 온 집이 죽만 먹고 살았는데 이미 몇 달을 지내고보니 지금은 그마져 떨어져 참으로 걱정이 되어 그저 애가 탈 뿐입니다. 그대의 깊은 정을 믿고 부탁 드립니다. 쌀을 좀 보내주시면 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다.” 이른바 쌀을 꾸어 달라는 「걸미첩(乞米帖)」이다. 그 편지가 현재까지 남아 회자되고 있는 것은 요즘 말로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하는 ‘을’의 위치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서체로 자신의 곤궁함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평상심에 따라 구부러지지 않은 서체로 구차와 남루를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에 그랬으리리.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황상(黃裳)이 말하길 “내가 안진경이 쓴 「걸미첩」을 보았는데 가난하고 천한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기에 도를 지킬 수 있었음을 알게 됐다. 비록 구부러지지 않기가 어려우나 강직하고 바른 기세, 성실성이 그 글씨체와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후세의 평가가 이러하니 글씨에 온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이미 증명한 셈이다. 그러므로 ‘심내화(心乃畵)’나 ‘심정즉필정(心正卽筆正)’의 단어들은 궁극의 경지를 향하는 이들의 통하기 어려운 길이며 문자와 감각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나 자신도 젊은 시절, 스승에게서 한결같이 들었던 말이 있다. “머리 깎고 수행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라. 살얼음을 걷듯 매사에 신중하거라” 등등.. 물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도제식 교육방법이다. 열심히 그린 작품을 보시고도 칭찬마저 없으셨다. 그저 살며시 미소를 지으시며 "그만하면 쓰겠다"가 최고 칭찬이셨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람됨을 강조하면서 때론 찬바람이 씽씽 부는듯 엄하게 대하셨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뒤 내가 그때 스승의 나이가 되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인품이 바른 사람에게 예술이나 학문이 더한다면 더 이상 무얼 구하겠는가!

     

     당시 스승께서 사람 먼저 되라는 말씀에, “사람 공부하려면 그림은 언제쯤 그려야 할까요”라고 물어 볼 걸 못 물어 보았다. 물어 보았다면 어떤 답변이 돌아 왔을까? 생각만 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지금 나는 화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화가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내 작품을 소장한 누군가는 거실에, 또는 사무실에 걸어 놓고 감상하면서 “저 작가는 그림도 괜찮지만 사람도 괜찮아!” 하고 말하는 이들이 한 둘은 있겠지 하는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2021.9.26. 일지춘실에서.

    오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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