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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4월호]
     


    나를 믿지 말아요

    주홍(치유예술가, 샌드애니메이션 작가)

    아침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울먹인다. “선생님, 페이스북 친구라서 믿고 소통했다가 보이스피싱에 걸린 것 같아요.” “경찰에 신고하셨어요?” “네, 그런데 수사 담당자가 결정되려면 며칠 걸린다고 해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 친구라서 믿었고,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카톡으로 연결돼 중요한 물건을 해외에서 택배로 보내준다고 하기에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귀한 물건이라 국제공항에서 관세 부분에 걸려서 통관절차가 복잡해졌다고 통관 앱을 깔아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앱을 깔고 나서 1억을 갈취당한 것이다. 통화 중에 정말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나를 믿었는데 사기를 당했구나.’
     

    보이스피싱에 걸린 그분은 페이스북의 내 친구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는 이어졌다. “그 사람은 쿠웨이트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군인이구요. 아이와 찍은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어요.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싱글이고요. 이 친구와 잘 아는 사이인가요?”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른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내 페이스북의 친구라서 믿고 소통했을 것이 아닌가!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아픈 전화를 끊고 이 글을 쓴다. 나를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글이다. 친구들에게 나를 의심하라는 말을 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악마는 가장 선한 옷을 입고 있다. 특히 아이와 찍은 사진이나 강아지나 고양이와 찍은 사진들은 보는 이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또 쿠웨이트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말에 마음을 열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 분은 진짜 평생 봉사를 하며 살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더 믿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전 세계가 연결된 디지털 정보시대다. 대부분이 스마트 폰으로 돈을 주고받는 은행 일을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을 아무리 강화해도 정보화 시대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서로 믿고 살까? 사기를 당한 뒤 운이 나빴다고 하며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국제적 네트워크 사기는 경찰도 범인을 잡기 어렵고 문제 해결이 어렵다.

    믿음의 관계를 일단 의심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아는 교수님도 절친한 친구의 페이스북 친구이기에 믿어서 보이스피싱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은 솔직하게 내용을 말해주셨다. “너무 친절하고 믿음이 가는 아름다운 아가씨와 대화하다가 800만원을 급하게 카드로 빼서 보내주고 말았네요.” 그리고 신고는 했지만 그대로 빚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무장해제되는가? 자식이 어렵다는 상황에서 부모는 무장해제가 된다. 대부분 아들이나 딸, 부모의 문자가 보이스피싱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가장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믿음과 외로움 같은 심리 상황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하고 싶다.’라는 욕망으로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 상상력은 현실이 된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내 안에 있음을 알고 그 욕망을 알아차리는 것은 낚시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멋진 이성과 사귀고 싶다.’, ‘착한 사람이고 싶다.’, ‘명품을 갖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권력을 갖고 싶다.’ 등등의 욕망이 매 순간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 욕망은 삶을 생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기꾼의 낚시 바늘에 걸려 허덕이게 한다. 자기 자신을 살피는 일은 매 순간 일어나는 내 욕망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관계에는 반드시 ‘거리’가 필요하다. 안전하게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보이스피싱에 걸려든 후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기 쉽다. 누구도 사람을 믿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에 거리를 둔다는 ‘그 사람’에 ‘자기 자신’이 포함되면 그때 비로소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즉 나 자신도 ‘욕망’이라는 ‘불덩이’가 있고, 그 불이 어디로 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일을 행할 때, 내 안에서 어떤 불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서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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