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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10월호] 

     

    지자체 분리와 통합의 역사성

    김덕진(광주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오늘날 우리의 갈등 요소 가운데 지자체의 분리와 통합도 있다. 이 원죄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군사정권의 독재정치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의 직접적 뿌리는 백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 부, 군, 현으로 불리던 기초자치단체 명칭을 조선 정부는 1895년에 군(郡)으로 일원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896년에 전라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누고 남도의 수부를 광주에 두었다.

     

    우리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몇 개의 군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하였다. 그 결과 화순, 능주, 동복이 화순군으로, 곡성, 옥과가 곡성군으로, 담양, 창평이 담양군으로, 나주, 남평이 나주군으로 통합되었다. 낙안은 이 이전에 순천과 보성으로 분리 흡수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면서 일제는 식민지배의 원활함을 위해 일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부(府)라는 ‘특별 행정구역’으로 분리시켰다. 그 결과 1914년에 무안부에서 목포부가 독립되고 나머지는 무안군이 되었다. 그리고 1935년에 광주에서 광주부가 독립되니 나머지는 광산군이 되었다. 이런 곳이 전주-완주, 옥구-군산 등 전국 곳곳에 있었다. 이리하여 한 지역이 도너츠 형태로 한 가운데만 다른 구역인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부를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에 시(市)로 명칭 변경을 하였다. 그 결과 목포부는 목포시로, 광주부는 광주시로 되었다. 기형적인 행정구역은 그대로 유지되어 1949년에 순천에서 순천시가 독립되고 나머지는 승주군이 되었다. 이를 군사정권은 표를 얻기 위해 선심정책으로 악용하였으니, 나주에서 금성시가, 정읍에서 정주시가, 남원에서 남원시가 독립되었다. 이 정책이 누구만을 위한 것인지 독자들은 금세 알아챌 것이다.

     

    뒤이어 들어선 민주정부는 과거의 분리정책(이간질 정책)을 손질하면서 지자체를 통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나주, 순천, 그리고 정읍, 남원, 익산이 원래대로 돌아가 하나가 되었다. 아직도 하나가 되지 못한 곳으로 무안-목포, 전주-완주가 있다. 3려는 여수로 통합되었지만, 구 청사 문제로 지금까지 뉴스를 타고 있다.

     

    군사정권은 광주시와 광산군을 합쳐 직할시로 만들어 전라남도에서 독립시켰다. 이리하여 1018년 이래 하나였던 곳이 두 곳으로 나뉘고 말았다. 광주에 있던 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였는데, 이전 부지 선정할 때에 그리고 구 도청 자리에 문화전당을 지을 때 우리는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다시 합치자는 적도 한 두 차례 있었다. 근래 또 다시 광주⋅전남 통합론이 제기되었으니, 그것이 ‘국가 개조’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현안 해결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갈등의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걱정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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