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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5월호]
     

     

    김현승의 까마귀

     

    백수인(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고문, 조선대 명예교수)

     

    세상에 까마귀라는 새의 종류는 100여 종에 달하는데, 우리나라에만도 8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흔한 갈까마귀와 떼까마귀는 겨울새이고, 큰부리까마귀와 까마귀는 텃새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에 까마귀는 신령스러운 새로 앞일을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고 인식되기도 했다. 『삼국유사』에 까마귀는 사람의 앞일을 예언하거나 해야 할 바를 인도하여 주는 새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까마귀는 태양의 정기로도 인식되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세오녀설화’(延烏郎細烏女說話)는 우리의 태양신화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의 이름에 모두 까마귀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 그리고 옛 신화에는 태양을 세 발 달린 까마귀(三足烏)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고분벽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변화되어 근대 이후 우리는 일반적으로 까마귀를 흉조라고 하여 터부시해 왔다. 까마귀 울음소리는 죽음의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까마귀가 울면 그 동네에 초상이 난다고 믿고 있으며, 까마귀 울음소리는 불길한 조짐으로 알려져 있다. 전염병이 돌 때 까마귀가 울면 병이 널리 퍼진다고도 하고, 길 떠날 때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에게 까마귀는 불길한 새로 받아들여져 있다.

    현대시에서도 까마귀가 가끔 나타나는데, 가령 오장환의 시에서 “오밤중에 나는 갈매기도 까마귀처럼 불길하도다”(「해수」 중에서)라고 한 것도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까마귀를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김현승이다.

     

    내가 여러 새들 중에서도 까마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릴 적 내 고향에서부터였다고 생각된다. 나의 고향은 따스운 전라도의 남쪽 광주이다. 이 광주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양림동이다. 이 양림동에는 커다란 부잣집들이 진을 치듯 몇 채가 있는데, 이 집들은 남도에서는 으레 그렇듯 크고 깊은 대숲들을 배경으로 삼고 더 한층 위엄을 자아내고 있었다.

    양림동의 아니 광주의 까마귀들은 그 크고 울창한 대숲에서 저들의 아침을 맞아 출발을 서둘렀고, 또한 저들의 황혼을 맞아 피곤한 깃을 고요히 내려 접는 것이었다. 아침 새벽에는 어느 새가 먼저 일어나 진두지휘를 하는지 모르지만, 새까만 새들은 대오도 정연히 편대를 작성하여 맞은 편에 머얼리 크게 솟아 있는 무등산을 향해 날아가곤 하였다.

    -김현승, 산문 「겨울 까마귀」 중에서

     

    김현승은 습속으로 내려오는 까마귀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을 과감히 깨버리고 자신만이 가지는 새로운 개념으로 시적 의미를 창조하고 있다. 그는 “나의 시집에도 까마귀 백 개만 시재로 넣으련다”(「까마귀」 중에서)라고 할 정도로 까마귀를 좋아했다. 그는 까마귀를 “회색 보표 꽂은 비곡의 명작가”, “서산에 깃들이는 시인”(「까마귀」 중에서)이라고 은유하기도 하고 “영혼의 새”(「겨울 까마귀」 중에서)라고도 했다. 이처럼 김현승에게 까마귀는 “내가 십이월의 빈들에 기늘게 서면 /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고독한 존재의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의 문학적 장치의 압권은 다음의 싯구에 있다.

     

    가을에는

    호을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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