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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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안실(時雁室)과 한심헌(閒心軒)


                                                                                           김 상 윤(전 상임이사)


    년 초봄, 마당 오른편에 조촐한 서재를 하나 지었다.

    아예 살림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서재이다.

    방 한 칸에 욕실 하나, 나머지는 모두 서재 전용공간이다.

     

     

     

    서쪽 창으로는 삼인산(三人山)이 통째로 들어오고, 북쪽 창에서는 병풍산이 춤을 춘다.

    동쪽에 넓게 뚫린 큰 창 앞에서는 마당의 온갖 나무와 꽃들이 인사를 하고, 좀 떨어진 곳에서는 푸른 대나무 숲이 손짓을 한다.

     

     

     

    방 안에 있는 남창 바로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는데, 예쁜 금붕어 떼들이 하루 종일 재잘거리고, 고개를 들고 먼 데를 바라보면 다정한 무등산이 너 거기서 놀고 있느냐?”고 알은 채를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 서재는 나 혼자 쓰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힘들게 살아온 우리 후배들에게 여유 공간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지은 것이다.

    힘들 때 여기 와서 쉬었다 가도 좋고, 때로는 회의 장소로, 때로는 세미나 장소로 사용해주면 더더욱 좋겠다.

     

    그동안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생들이나 광주과학기술원 학생들이 수업도 하고 즐거운 파티도 했다.

    윤상원기념사업회에서는 하룻밤 묵으며 워크숍을 하고, 어떤 후배는 회사 직원들을 데리고 와서 신년 하례식을 하기도 했다.

    논어 세미나 팀들은 우리집에서 와인파티를 하고, 한 동네에 있는 정영기교수댁에서 작은 음악회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고생하고 있는 우리 후배들은 이 공간을 사용한 적이 없다.

    아직도 너무 바빠서,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마음의 여유들이 없는가 보다.

    허기야 나 역시 현장에 있을 때는 이런 아늑한 공간에서 쉬어갈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늘상 기다려지는 것은 세상일로 고생만 하고 있는 내 후배들이다.

     

    벗들이 서재 이름을 짓자고 한다.

    그래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내 전용 공간이 아니니 내 당호(堂號)로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꼭 기리고 싶은 조상에게 바치는 이름으로 하고 싶었다.

     

    내가 꼬마였을 적에 아침저녁으로 겸상을 해야 했던 증조할아버님의 호가 은호정(隱乎亭)이어서 그렇게 부를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학에 도저한 김교수가 조상의 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좀 그렇다는 말씀을 한다.

    예의가 아니라는 뜻일 테다.

    그래서 서재 옆에 있는 정자의 이름을 은호정으로 하기로 했다.

    이 정자는 할아버님 것입니다.’는 의미로.

     

     

    그러고 나니, 서재 안에 있는 방 한 칸은 어머니께 드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80세에 돌아가셨으니 옛날에 비하면 그래도 장수하신 셈이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그러니까 6·25동란이 한창일 때 돌아가셨다.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집 식구가 그날 저녁에 여덟 명이나 죽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어린애였을 때, 함평 학다리 반곡마을 외가에 가면 동네분들께서 시앙이 아들 놈 왔구나!” 하시면서 내 손에 돈을 꼭 쥐어주곤 하셨다.

    하도 많은 분들이 돈을 주어서 한 석 달 동안은 용돈으로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엄마 없는 내가 몹시 측은해 보였던 모양이다.

    또한 시앙이가 스물셋의 꽃다운 나이에 죽은 것도 짠했을 터이다.

    다 큰 뒤에 알고 보니, 어머니 이름은 시앙이가 아니라 시안(時雁)이었는데, 뜻으로 보면 제 철 만난 기러기정도가 될 것 같다.

     

    정자를 은호정이라 한 것처럼, 설사 예의에 어긋난다 해도 서재에 있는 방 한 칸은 어머니에게 드린다는 의미로 시안실이라 하고 싶었다.

    제 철 만난 기러기의 방’!

    괜찮지 않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석계(石溪) 장주현선생이 맛깔스런 글씨로 時雁室을 써서 보내왔다.

    곧 아담하게 표구까지 하였는데, 아직 벽에 걸지 않고 그냥 서가 아래 놓아두고 있다.

    괜찮겠어요?”

    어머니에게 묻고 있는데, 아직 대답을 주시지 않는다.

        





    은호정(隱乎亭)은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특선까지 한 내 동생 상집이에게 현판글씨를 쓰게 할 참인데, 서구청장인가 뭔가 나와서 바쁘게 설쳐대니 좀 차분해진 뒤에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그렇다면 서재 이름은 무어라 하지?

    옛날 내 회사 이름이 하심이니, 하심헌(下心軒)이라 할까?

    아니 한가할 한()을 써서 한심헌(閒心軒)이라 할까?

    기왕이면 달을 문 위에 올려놓고 보는 것이 더 운치가 있어 보이니, 자의 달()을 문()에서 빼내 문 위로 올리면 어떨까?

     



    스스로 한심헌 놈이라 생각하니 한심헌(閒心軒)이 좋을 듯한데, 아침 산보를 같이 하는 친구는 에이, 한심헌이 무엔가? 하심헌(下心軒)이 좋겠네.” 그런다.

    그런가?

    시안실에 앉아 오늘도 나는 한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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