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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8월호]

     

    엄마의 그림책 자서전
     

    주홍(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부운영위원장, 치유예술가)

     

    “엄마, 우리 동네에 동구인문학당이 있는데요. 어르신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에 아버지와 엄마 두 분을 신청했는데 선정됐어요!”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는데 내가 자서전을 쓴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자서전을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나는 오빠와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부모님을 모시고 동구인문학당을 찾아가서 그림책 자서전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아버지(1934년생, 89세)는 초등학교를 다녔으나 한글이 아니라 일본어만 배우셨고, 형편이 어려워 그나마 졸업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1939년생, 84세)는 초등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성장하셨다. 한글이며 한자를 간판이나 기차역의 안내판 등을 보며 스스로 익히신 아버지 어머니께 자서전을 쓰는 일은 큰 부담이고 도전이었다.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책 자서전이니 그려본 적 없는 그림도 그려야만 된다. 아버지는 해보겠다고 하셨는데 어머니는 ‘내가 할 수 있을까?’ 내심 두려워하셨다.

    “엄마, 오빠와 제가 함께 가니까 걱정마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동구인문학당 나들이 함께 해요.”

    80살이 넘어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그림을 그리고 한글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데 자서전을 쓰라고 하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엄마의 두려움은 당연하다.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을 배우고 직접 16판의 그림과 글을 쓰게 된 날, 아버지의 그림과 빽빽하게 쓴 글을 읽고, ‘부모님의 인생이 대한민국 민중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구나!’하고 절절하게 느껴졌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시절 한반도에서 가난한 민중의 자식으로 태어나 625전쟁을 거치며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이승만 대통령의 제주4.3과 여순14연대사건과 학살, 박정희 독재에 전두환 군부의 5.18까지 겪었으니, 그림책 한 권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과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내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두 분 다 일제강점기에 탄광에서 일하셨다는 사실도 알았다. 할아버지는 지금은 갈 수 없는 가장 험한 곳 한반도 맨 위쪽 아오지탄광까지 징용을 가서 일하셨고, 외할아버지는 화순탄광에서 일하셨다. 해방 후, 청소년기에 625전쟁이 터져서 그 굶주림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릿고개였다. 언제 이렇게 부모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동구인문학당의 어르신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면 부모님의 삶의 이야기를 모르고 이 귀한 시간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그림과 글을 가족들과 한 컷씩 공유할 때마다 멀리 있는 언니와 동생들은 감탄하며 부모님과 통화가 길어졌고, 우리 가족은 화목한 시간의 선물을 받았다.

    “나는 시멘트 틈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태어났지만, 이제는 탐스럽고 아름다운 큰 꽃이 되었다.”라고 하시며 “고생은 했지만, 진실하게 살았고 여한이 없구나! 자서전 제목을 ‘민초’라고 해야겠다.” 아버지의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버지의 마음이 공감되어 눈이 뜨거워졌다.

    엄마는 한 컷 두 컷 바느질하듯이 그림을 그리시며 표현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어려운 시절, 자식만 바라보고 견딘 당신의 삶을 돌아보며 가난을 극복하고 육남매를 낳아 키우신 한 생을 정리하셨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고 어렵다고 하셨던 엄마는 “내가 젊은 시절, 죽지 못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육남매를 낳아 잘 키우고 노후에 푸른길 공원을 산책하며 동네에 있는 인문학당에서 그림도 그리고 자서전을 쓰고 있구나.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하시며 즐거워하셨다.

    ‘어르신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근현대, 일제강점기와 전쟁, 독재 치하에서 강인하고 선한 의지로 선택하며 그 시대를 살아낸 부모님 세대의 재발견이다. 동구인문학당에서는 갈 때마다 “이 프로그램 어떤가요?”하고 자꾸 질문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더 담아보려는 노력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흩어진 공동체를 문화와 예술로 다정하게 엮어내고 있다. 동구민인 부모님께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셨다. 섬세하고 친절한 동구청 행정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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