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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9월호]
까마귀와 오징어
백수인(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고문, 조선대 명예교수)
요즘 들어 까마귀 울음소리가 부쩍 많이 들린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까악 까악” 울어댄다. 듣다 보니 그 울음소리 때문에 ‘까마귀’라는 명칭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령 “뻐꾹 뻐꾹” 우는 뻐꾸기, “부엉 부엉” 우는 부엉이, “소쩍 소쩍” 우는 소쩍새, “뜸북 뜸북” 우는 뜸부기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까맣다”라는 말도 까마귀의 빛깔에서 비롯되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소리(청각)에서 이름으로, 다시 그 존재의 시각적 특성인 빛깔(시각)의 형용으로의 전이를 짐작해 본 것이다.
『우리말 어원사전』(김민수 편, 태학사, 1997)에서 ‘까마귀’ 찾아 보았다. “감-〔黑〕+아괴〔접사〕”로 보고 있다. 이는 ‘까마귀’의 명칭이 그 존재의 가장 큰 특징인 검은 빛깔에서 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괴’를 접사로 보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면서 실사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리고 참고로 “감/가마〔黑〕+고리/구리〔鳥〕”를 제시하고 있다. ‘고리/구리’는 ‘새’를 뜻하는 고유어로 ‘왜가리, 딱따구리, 병마구리’를 예로 들고 있다. 그래서 ‘까마귀’의 고어 ‘가마괴’의 ‘괴’는 ‘고리/구리’>고이>괴의 어형 변화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검은 새’라는 의미의 고유어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 사전에 ‘검다’의 어원은 미상으로 나와 있으나 민간에서는 “검(黔)+다〔어미〕”로 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내 상상과는 다른 설명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국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7월 13일(한국 시간) 열린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이자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받는 등 6개 부문에서 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운 전례 없는 대기록에 외신들은 하나같이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오징어’라는 단어의 어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원은 한자어 ‘오적어(烏賊魚)’에서 왔다는 설이 옳은 것 같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오징어를 ‘乌贼[wūzéi]’ ‘乌贼鱼[wūzéiyú]’ ‘乌鱼[wūyú]’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고 본다. ‘오적어(烏賊魚)’의 한자 뜻을 그대로 새겨보면 ‘까마귀 오’, ‘도둑 적’, ‘물고기 어’이다. 그런데 이 한자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적(賊)’의 의미는 ‘도둑’의 의미 외에 ‘해치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까마귀를 해치는 도적 같은 생선”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오징어는 수면 위에 죽은 듯 유유히 떠 있으면서 자신을 잡아먹으러 물 위로 내려온 까마귀를 재빨리 낚아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으므로 ‘오적어>오징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징어가 까마귀를 낚아채서 잡아 먹는다는 상상은 좀 엉뚱하다. 여기에 쓰이는 ‘까마귀 오(烏)’는 ‘오죽(烏竹)’, ‘오석(烏石)’처럼 ‘검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오징어’가 적을 만나면 까만 물을 내뿜는 것과 의미적으로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오늘도 “까악 까악” 우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적의 시야를 가리는 오징어 먹물을 떠올린다. 오장환은 까마귀를 ‘불길’의 의미로 표현하지만, 태양 속의 ‘삼족오’는 신성성을 상징한다. 오세영은 까마귀를 조금의 부정도 용납하지 않은 고고한 삶의 상징으로 노래한다. 요즈음에는 ‘오징어 먹물’이 다양한 방식의 요리에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