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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이달의 칼럼 2월호]
‘민주의 종’에 새겨진 광주인의 정체성
노 성 태(재단 컨텐츠연구소장, 남도역사연구원장)
우리나라 사찰에 꼭 있는 유물 중 하나가 아마도 종(鐘)일 것이다. 물론 종은 사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찰에서의 종은 일반적으로 시간을 알리거나 대중을 집합시키고 의식을 행할 때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종은 에밀레종이라고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이나 매년 12월 31일에서 이듬해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33번 타종하는 제야의 종 즉 서울 종로의 보신각 종일 것이다. 에밀레종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슬픈 전설을 품고 있어서일 것이고, 제야의 종은 매년 한번 정도는 꼭 텔레비전을 통해 새해의 시작을 알려주는 종이기 때문이다.
광주에도 광주만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종이 있다.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 시계탑 옆에 위치한 ‘민주의 종’이 그것이다. 민주의 종은 2005년 제작되었으니 이제 나이 18살 청춘의 종이다. 그러나 민주의 종은 그 어떤 종보다도 나름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광주인들의 기질과 정서, 즉 광주인들의 정체성이 잘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선 제원(諸元)부터 살펴보자. 종은 전체 높이가 4.2미터, 몸체 높이는 3.3미터이고 바깥 지름이 2.5미터이다. 엄청난 크기의 종인데 얼른 그 크기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무게가 8,150관이다. 1관(貫)의 무게가 3.75㎏이니 30.5톤이나 된다. 에밀레 종의 무게가 18.9톤이니, 거의 두 배가 되는 엄청난 종이다. 무게 8,150관의 815는 8·15광복과 이를 거꾸로 하면 보이는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단위다.
민주의 종은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 통에 새겨진 비천(飛天)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찰의 종에는 일반적으로 하늘에 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인(仙人)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민주의 종에는 선인 대신 5·18민주항쟁추모탑과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무등산 입석대·서석대가 새겨져 있다. 광주인들의 가슴에 들어 서 있는 상징물들이다.
광주인의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에 많은 분들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정의로움’이라고 대답한다. 정의로움은 시대적 가치를 실천하는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일제하 최고의 시대정신이 독립운동이었고 한다면 해방 이후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지켜내는 일이었다. ‘민주의 종’에 새겨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과 5·18민주항쟁추모탑은 광주인들이 앞장 서 실천한 정의로움, 즉 시대정신을 실천한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의 종에 새겨진 광주 칠석 고싸움은 88올림픽 당시 식전 행사에 시연되어 한국인의 단결력과 투쟁 역량을 전 세계에 알린 위대한 역사유산이며, 무등산 입석대·서석대는 광주인들의 지킴이 즉 성황신이다.
이처럼 민주의 종에 새겨진 4개의 문양은 광주인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광주인들이 무엇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18민주광장에 가시면 5시 18분 시계탑에서 흘러나오는 ‘님을 위한 행진곡’도 들어보고, 민주의 종각에 새겨진 광주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비천도 살펴보셨으면 한다. 광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묻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