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노경수 (광주대학교 교수, 재단 이사장)
지난 5월 8일, 가톨릭교회는 새 교황을 맞이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소속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그는 교황명으로 ‘레오 14세’를 택했다. 이는 1891년 산업화 시대의 사회 문제에 응답하고자 했던 레오 13세 교황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당시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는 회칙을 통해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 정의를 천명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에, 교회가 다시 사회와 인간의 존엄을 향해 목소리를 낼 때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69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이 깊어 두 형과 함께 ‘미사 놀이’를 하며 자랐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한 후 사제가 된 그는 젊은 시절 페루로 파견되었다. 30대에는 선교사로, 60대에는 교구장으로 20여 년을 남미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사목했다. 힘든 현장에서 몸으로 신앙을 실천한 세월이 그를 교회 지도자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40대 이후 그는 수도회 관구장과 총장을 거치며 국제적 책임도 맡았다. 총장 임기를 마친 2014년 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치클라요교구의 주교로 서품되었고, 2023년에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되며 로마로 달려갔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2013년, 가톨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성직자 아동 성추행 사건, 교황청 재정 비리, 그리고 폐쇄적인 교회 운영은 교회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다. 세속화와 상대주의의 물결 속에서 교회는 외면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야전 병원’ 같은 교회, 자비의 얼굴로 세상과 만나는 교회,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교회. 이 모든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태동한 ‘해방신학’의 영향을 짙게 담고 있다.
해방신학은 억압받는 민중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 인간의 빈곤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죄악으로 규정하며, 교회가 가장 낮은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바탕으로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하고 교회의 민주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개념이 바로 ‘시노달리타스’이다.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는 낯설지만 중요한 말이다. 이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을 의미한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교회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교회 내부의 민주주의이며, 신앙 공동체 모두의 책임 있는 참여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통해 ‘위로부터의 명령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경청과 공감’을 교회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개혁 노선은 언제나 반발에 부딪혔다.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은 그가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고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비판했다. 교황청 안팎에서의 저항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프란치스코의 선종 이후, 교회는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레오 14세 교황을 선택함으로써 그 개혁의 길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자신의 첫 메시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 귀중한 유산을 받아들여, 믿음에서 태어나는 희망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에게 있어 프란치스코 개혁은 단절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의 뿌리에서 비롯된 필연의 길이다.
레오 14세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2002년 수도회 총장 시절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이후 2003년, 2005년, 2008년, 2010년 등 총 다섯 차례 방한한 바 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친절한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라 기억한다. 권위보다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평가다.
전쟁, 기후 위기, 기술 격변의 시대. 이런 시대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교황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레오 14세 교황의 삶은 그 답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시간, 개혁을 향한 꾸준한 헌신, 그리고 ‘같이 걷는 교회’에 대한 믿음. 그가 보여줄 새로운 여정에 깊은 기도가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