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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통합 이후, 광주·전남 문화·예술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 인문학과 예술을 미래 자산으로 키우기 위한 조건 -
송재환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편집위원장)
광주와 전남의 행정통합 논의는 행정 효율성이나 재정 구조 개편을 넘어,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중심에는 인문학과 예술을 포함한 문화정책이 있다. 행정통합은 문화의 ‘통합’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문화가 스스로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은 이미 서로 다른 문화적 강점을 축적해 왔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라는 가치 위에서 현대예술과 창작 실험이 활발한 도시이고, 전남은 전통예술과 생활문화, 농어촌과 자연을 기반으로 한 깊은 인문 자산을 지니고 있다. 행정통합 이후의 과제는 이 차이를 하나로 묶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강점을 더 크게 키우고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첫 번째 과제는 문화정책의 위상 강화와 장기 비전 수립이다.
행정통합 과정에서 문화는 종종 부수적인 분야로 취급된다. 그러나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자 미래 산업의 기반이다. 통합 광역 정부 차원에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인문·예술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문화예산을 ‘경기 상황에 따라 줄이는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지원 방식의 전환이다.
지금까지의 문화지원은 단기 공모, 행사 중심, 결과 위주의 평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행정통합 이후에는 예술인과 인문 활동가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창작 과정, 연구 과정, 실패까지도 포용하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전남의 군 단위 지역과 농어촌에서는 소규모라도 꾸준히 이어지는 생활문화·인문 프로젝트가 지역 공동체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정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세 번째는 문화 인프라의 질적 고도화다.
대형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늘리는 것만이 발전은 아니다. 지역 도서관, 작은 문화공간, 마을 기록관, 레지던시와 같은 기초 인프라가 촘촘히 연결될 때 문화는 일상 속에 자리 잡는다. 행정통합은 광역 차원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러한 공간들이 협력하고 순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네 번째는 청년과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 생태계 조성이다.
많은 청년 예술인과 인문 전공자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창작 활동과 주거, 교육, 일자리를 연계한 문화정책,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문화콘텐츠 산업 지원은 행정통합 이후 반드시 강화되어야 할 분야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문화정책의 중심에 시민을 두는 것이다.
인문학과 예술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해석하고 질문하는 공공 자산이다. 행정통합 이후의 문화 발전은 시민 참여형 인문 프로그램, 지역 문제를 다루는 예술 프로젝트, 세대 간 기억을 잇는 기록 활동 등을 통해 삶과 밀착되어야 한다.
행정통합은 문화의 방향을 새로 설계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문화를 하나로 묶으려 하기보다, 더 깊게 키우고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광주·전남이 행정통합 위에서 선택해야 할 문화 발전의 길이다. 인문학과 예술이 지역의 과거를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미래를 여는 힘이 될 때, 행정통합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