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여
샤먼의 제의와 브리야트 민속박물관(7)
아침에 일어나 마을을 살펴보니 동네 여기저기에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30미터도 넘어 보이는 큰 소나무들인데 옹골차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목재로서는 더 이상이 없겠다.
우리나라 도시 한복판에도 키 큰 소나무들을 많이 심어놓았지만, 여기에 있는 소나무들처럼 반듯이 곧게 뻗은 소나무들은 보기 어렵다.
강원도 춘양 같은 곳에 자라는 소나무들은 눈이 많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지를 길게 뻗지 않고 위로만 쭉쭉 자란다고 한다.
아마 시베리아 타이가에서부터 만주를 지나 우리 백두대간까지 그런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나 싶다.
무척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나 낙락장송에 길들여진 우리의 눈에는 운치가 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시베리아 타이가의 소나무 숲에는 모두 이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우리를 태우고 갈 차들이 민박촌 골목으로 들어오자 여러 마리의 개들이 몰려든다.
전혀 사나워 보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자세도 없다.
어제도 이런 풍경을 많이 보았는데, 도로에서 개들끼리 장난을 치면서 노는 것은 물론 소들도 어슬렁거리며 온 동네를 자유스럽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곳에는 외양간이 없나?’
하도 천연덕스러운 풍경이어서 어떤 분은 “너희들 참 좋은 곳에서 태어난 줄 알아라!”하시면서 부러워하신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야 개들이 마음대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지만, 소들이 온 동네를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심자한(心自閑)!
말 그대로 마음이 절로 한가해진다.
승합차가 마을을 벗어나 휘돌아가는 언덕에 셀레게가 여럿 서있다.
몽골장군 같은 우락부락한 기사님께서 급히 담뱃불을 붙여 셀레게에 던진다.
아하!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우리가 서낭당에 돌멩이를 던지듯이, 이들은 향불을 셀레게에 올릴 수 없을 때는 이렇게 담배에 불을 붙여 던진다는 것이다.
알혼섬 관광은 형편없이 끝났지만 부르한바위를 보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우리는 브리야트의 민속공연을 보기 위해 우스찌아르다 마을로 갔다.
차에서 내려 도로 옆에 붙어있는 넓은 마당으로 들어갔더니 4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 큰 소리로 환영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브리야트의 전통복장을 한 채 조그만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환영 세리머니와 정화의식의 한 장면
환영 인사말에 이어 정화의식을 거행하는데, 한 사람씩 모닥불에 오른쪽 발과 왼쪽 발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리게 한다.
여자들은 발 대신 손으로 정화의식을 한다.
하얀 우유를 뿌리는 것도 환영의식의 하나라는데, 정화의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기타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큰 마당을 지나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데, 입구에 있는 문 앞에서 다시 정화의식을 거행한다.
이번 정화의식은 이마에 검은 점을 하나씩 찍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샤먼복장을 한 오십대 후반이나 육십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큰 소리로 인사하면서 등장한다.
최군은 “저분은 진짜 샤먼으로 매우 유명한 사람입니다”라고 설명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한국사람 아닌가?
브리야트인들이 설령 우리와 같은 핏줄이라 해도, 기후와 풍토가 전혀 다른 곳에서 수천 년 동안 떨어져 살았으니 무언가 서로 다른 외형상의 특징들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리야트 샤먼과 광주 사람
그런데 이 공연의 주인공인 ‘진짜 샤먼’은 우리나라 사람과 정말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우리와 닮아 있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주인공 샤먼의 주도 아래 또 다시 모닥불로 정화의식을 한다.
마유주(馬乳酒)를 모닥불과 하늘에 뿌리는 것을 보니,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하던 ‘고수레’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모든 의식에서 하늘과 태양 그리고 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샤먼의 외투에는 동물의 털이 부착되어 있고, 사람과 동물 문양도 여럿 붙어있다.
또한 무지개를 상징하는 줄무늬가 여럿 있고, 4단계의 사다리 모양 문양도 어깨 좌우에 붙어있다.
샤먼의 머리에는 뿔이 있고 방울도 여럿 달려있다.
처음 대하는 샤먼의 모습이라 그 상징적 의미들을 정확히 해독할 수는 없으나, 자기네 무리를 위해 사냥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강한 욕구가 표현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물의 털을 외투에 붙여놓았다거나 사람들과 여러 동물 문양을 외투 여러 곳에 부착한 것은 그런 의도라고 느껴진다.
무지개를 상징하는 줄이나 사다리 문양을 어깨 좌우에 붙여놓은 것은 샤먼의 기원이 하늘에까지 올라간다는 상징일 것이고, 그들의 기원을 받아들여 신의 뜻이 샤먼을 통해 전달된다는 상징으로서 방울을 달았을 것이다.
우리네 무당들도 반드시 팔주령이라는 방울을 흔들어대지 않던가!
그들에게는 네 번째 손가락이 가장 신성한 손가락이라고 한다.
이 손가락을 마유주에 세 번 찍는데, 남편(또는 아내)과 자신 그리고 자식을 위해 세 번 찍는단다.
의식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자 해가 뜨는 곳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마음속으로 기원을 한다.
그 기원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태양을 향해 세 바퀴를 돌고 태양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으로 모든 의식이 끝난다.
물론 의식의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춤이 어우러지고 몇 가지 소극(笑劇)도 진행된다.
우리 일행을 공연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남자들과 여자들을 짝으로 만들어 우리를 웃기기도 한다.
이 공연은 진짜 샤먼들의 ‘제의’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일종의 민속공연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무당들의 진중한 제의 같은 맛은 전혀 느껴볼 수 없고 관광객들과 한바탕 어울리는 놀이라고 귀엽게 봐야 할 것 같다.
최군은 이 공연은 주로 수르하루방이란 명절에 부르는 노래와 춤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나는 그들의 오래된 전통에 경의는 표하고 싶어 브리야트 민속품들을 몇 가지 사가지고 나왔다.
민속공연의 한 장면
민속공연이 끝난 후 바로 옆에 있는 브리야트민속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에카체리나라는 40대 쯤 되어 보이는 브리야트 여성이 우리를 안내하면서 줄곧 설명을 해준다.
-브리야트는 원래 몽골의 영토였는데 1937년에 분리되었습니다.
비록 러시아에 속해 있으나 몽골과 브리야트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이칼 동쪽에는 브리야트자치구가 지금도 있고, 서쪽에는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브리야트자치구가 있었는데, 얼마 전 주민투표를 통해 이르쿠츠크 주와 합병을 했습니다. 등등.
민속박물관이 있는 우스찌아르다는 서쪽 브리야트자치구의 중심도시였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코뿔소나 곰 그리고 맘모스 등을 사냥하는 모습들, 유르따 지붕의 순록 장식,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 뜨개질로 만든 천연 옷감, 자작나무로 만든 그릇 등 브리야트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장간에서 공구를 만드는 모습도 있는데, 여자들은 대장간에 절대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가정 일을 전담했고 사냥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기술은 남자만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목민들은 여자들을 약탈하는 습관이 있어 무기 제조 기술이 여자들을 통해 다른 집단에게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자들이 대장간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고대에는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적에게 협조하거나 적이 데려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절름발이로 만드는 풍속도 있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인 것도 다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고대에는 샤먼 다음으로 대장장이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다.
샤먼은 살아있는 신으로 대접을 받았고, 일상생활 전반에 샤먼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부터 품어오던 의문이 떠올라 나는 에카체리나 선생께 질문을 던졌다.
“에카체리나 선생! 브리야트 사람들은 샤먼을 뭐라고 부르나요?“
“샤먼이라고 부르지요.”
아 그렇구나!
샤먼이라는 말이 엘리아데 같은 신화학자들이 그냥 갖다 붙인 용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왜 카탈로그나 자료집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무런 자료도 구하지 못하고 그냥 눈으로만 보고 나오려니 아쉬움이 너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