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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일보 기고]진주에 김장하, 광주에는 최병채 어른이 있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시간을 확인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 헌법을 지켜낸 순간, 전 국민은 환호했다.

    멋쟁이 문형배 재판관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었다. 39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하였지만, 재산은 4억원이 채 되지 않았다.  고위 공무원의 모습이 아닌 청렴한 보통 사람의 모습에 또 국민은 감동한다.

    그러나 오늘의 문형배를 있게 한 분이 있었다. 사천시에 태어난 김장하 어른이었다. 김장하 어른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친구들이 학교 다닐 때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열아홉 최연소 나이로 한약업사 자격을 땄고, 1963년 남성당한약방을 개업하여 50여 년을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그렇게 번 돈을 그는 지역사회에 환원했다. 육영사업, 장학사업을 했고, 평등사업과 민족문제연구소에도 오랫동안 후원자였다.

    문형배 재판관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다. 김장하 어른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문형배는 2019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청문회에서 "김장하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해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인사를 드리러 가자, 김장하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장하 어른이 있어 오늘 문형배가 있었던 것이다. 또 감동이다.

    광주에도 김장하 어른이 있다. 김장하 어른처럼 한의사가 되어 번 돈을 멋지게 지역사회에 환원한 춘담 최병채(1907~1987) 어른이 그다.

    곡성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최병채 어른은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에 있는 하마대라 침구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 양림동에 인과원을 개업한 뒤 침과 뜸의 명의로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 최병채 어른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침구술만이 아닌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었던 사람의 의술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과원은 늘 가난한 환자로 가득차곤 했다.

    춘담 최병채 어른의 진면목은 사랑의 의술을 실천한 한의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히 그의 육영사업은 지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운룡초등학교(곡성 석곡, 1947)를 시작으로 춘태여자고등공민학교(1960), 농업기술학교(화순 이서, 1965), 춘태여자중학교(1966), 신농중학교(1967),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1967), 국제고등학교(1984)를 설립한다. 운룡초등학교는 20리를 걸어 다녀야 했던 고향 아이들에 대한 배려였고, 춘태여자고등공민학교와 농업기술학교는 돈이 없어 배움의 기회를 놓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배려였다. 지역민들이 최병채 어른을 참교육자라 부른 이유다.

    그는 참 교육을 실천한 공로 등으로 1963년 전라남도지사가 주는 전라남도 문화상을, 1967년 경향신문사가 제정한 제2회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을 수상했다.

    명의로 이름을 날리면서 큰돈을 벌었지만, 최병채 어른의 삶은 매우 검소했다. 45평의 낡은 한옥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다. 그러면서도 최병채 어른은 모든 사재를 털어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에 정성을 쏟았고, 6·25전쟁 때 훼손된 무등산 자락의 증심사에 삼존불을 기증했다.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순신 장군을 제사지내는 사당 ‘무광사’도 지었다.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약값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가슴 또한 따뜻했다.

    최병채 어른은 가정 형편이 곤란한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장학금을 주어 사회의 동량으로 키워냈다. 캐나다 몬트리올 시립식물원에 근무했던 순천농고 출신의 양재홍도 그중 한 분이다. 그는 최병채 어른의 장학금을 잊지 못해 몬트리올 시립식물원에 근무하면서 라살대학과 최병채 어른이 세운 국제고등학교와 교류협력협정서를 체결하는데 큰 힘을 보탠다. 그의 도움으로 국제고등학교 출신 13명의 학생이 캐나다 라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최병채 어른의 장학금을 받았던 스위스 대사와 유엔대사를 지낸 박원화도, 노동부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수 변호사도 국제고등학교를 찾아 특강을 통해 학생들에게 큰 꿈을 심어준다. 50년 전에 받은 최병채 어른의 사랑을 다시 춘담의 제자들에게, 사회에 돌려준 아름다운 보은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문형배 헌법재판관을 키운 김장하 어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광주의 최병채 어른이 생각 난 연유다. 기리고 기억해야 할 정말 멋진 분들이다. 이 분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

    - 남도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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