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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어 이야기
    주홍
    치유예술가
    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코로나19, 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80넘은 부모님 세대가 더욱 고립된 생활을 하신다. “어머니, 어디 아프세요? 목소리에 왜 힘이 없으신가요?”

    “별일 아니다. 네 아버지가 통 식사를 안 하시고, 입맛을 잃어서 밥상을 차려놓으면 밀어내니, 나만 먹고 있것냐?” 거의 매일 부모님께 전화로 안부를 묻게 된다. 그래서 같이 굶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의리는 아버님과 함께 굶는 것이다. “어머니. 그러면 맛있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세요.” “평소에도 외식을 안 허고 산디, 요즘같이 위험 헐 때 나가서 외식을 허믄 쓰것냐?”

    의리 있는 어머니는 평생 자신을 위해 밥을 차린 적이 없다. 몇 년 전, 99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6·25 때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았으니, 시어머니의 밥상을 차리고 남편과 자식들 밥상만을 차렸다. 정작 자신을 위한 상을 차린 적 없는 삶을 평생 살아오셨다. 그래서 남편을 위해 밥을 차렸는데 아버님이 상을 물리면 어머니는 혼자 식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할 생각으로 무안에 도착했다.

    “바쁠 것인디 뭣 헌다고 왔냐? 밥은 묵고 댕기냐?” 어머니의 인사는 항상 정해져있다. 밥은 묵고 댕기는가를 묻는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아버님, 요즘 전어가 맛있다고 해서요. 무안에 있는 맛있는 집 소개해 주세요. 제가 입맛을 잃었어요. 가을 전어가 생각나서 왔어요.” 집나간 며느리처럼 말했다.

    “느그들 밥도 못 챙겨 묵고 일만 허냐? 뭣이 중헌디?”

    “가자, 내 기억으로 그 횟집을 찾아 갈랑가 모르것다만,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구이랑 회가 유명한 집이 있응께 같이 가보자.”

    집을 나서서 청계 쪽으로 20분쯤 차로 가니, 바닷가 횟집에 해름참에 도착했다. 전어회가 채 썰어 나오고 전어구이가 노릇노릇 머리까지 잘 구워져 나온 뒤, 마지막으로 전어회 무침에 밥을 비벼먹을 수 있게 푸짐한 상이었다. 출출한 저녁이라 전어회는 고소함을 넘어 단맛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입맛이 없다는 아버지는 ‘이야, 맛나다!’를 연발하셨고, 의리를 지키시는 어머니도 아버지가 잘 드시니 맘 편하게 즐기셨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은 거의 말없이 요즘말로 폭풍흡입을 했다.

    “아버님, 손자가 교육청 장학금을 받게 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부모님 얼굴에 화색이 확 돌면서 동시에 지갑을 열어 용돈을 주셨다. 학교에서 청소를 잘하고 어려운 일을 끝까지 해내서 장학금을 타게 됐다고 한다.

    “할아버지, 제가 장학금 탄 걸로 오늘 저녁 계산하고 싶어요. 장학금 절반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써야죠.” 아들이 용돈을 챙기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효도발언을 쏟아 놨다. 바로 박수를 쳤다. 전어로 다시 입맛을 회복하신 아버지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고, 황홀한 전어코스를 마무리 하고 밖으로 나오자 해가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변에서 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고, 아이들의 긴 그림자들이 모래사장에서 춤을 추는 듯 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모는 웃고 서 있다. 또 다른 가족의 풍경이다. ‘함께 밥을 먹어야 가족이고 식구다.’라고 하신 친정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부모가 됐고, 어른으로 성장한 딸은 취업준비에 열기를 다 하고 있다. 시험 준비하는 딸만 빼놓고 가을전어를 먹었으니, 딸과 함께 또 와야겠고, 친정 부모님과 또 와야겠고, 전어 좋아하는 친구들도 떠올랐다. 오랜만에 바닷바람도 참 좋았다. 멀리 여행을 함께 하거나 모든 가족이 모여서 잔치를 할 수는 없지만, 소소한 만남은 진하게 누려야 이 코로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고립된 부모님, 틈나는 대로 부모님을 찾아 함께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고,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이든 아름다운 기억이든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도 삶을 함께한 기억이다. 올해 가을, 아들이 사 준 가을전어의 기억은 평생 갈 것 같다.

    가족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해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한다. 요즘처럼 사랑할수록 몸을 멀리해야만 하는 시절에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고 만나야 할까? 먼저 나 자신을 잘 지켜야겠다. 소중한 가족들을 찾아가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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